갈 곳을 잃어버린 작은 분홍새는
창가에 다가선 채,
숲길을 걷고 있는 작은 새를 바라보고 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작은 분홍새는 귀를 기울이며,
높게만 보이는 하늘을 그저 다만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다.
분홍새는 창밖으로 보이는 숲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바람에 제 깃털을 날리며 바라보고 있다.
분홍새는
불어오는 바람으로 두 날개를 적시고
바람이 부는 숲길 위를 자유롭게 뛰며 날아다니고도 싶었지만
숲길에 부는 바람 속의 바람 소리도
창 앞으로 들이쳐 부는 바람과도 같은 바람 소리도
그냥 흘려보낼 뿐,
그 바람 소리 속으로 날개를 쳐 날아오르지도,
못내 그리워서
다른 데로 떠나보낼 수도 없는
하염없이 나부끼는 그 바람 속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지도 못한다.
그 언젠가 작은 분홍새가 기다리던
작은 새의 눈물 같은 날이 다시 찾아오면,
분홍새는 그때껏 자신의 작은 어깨와 두 날개를
붙들고 있던 한숨 같은 시름과 두려움을 모두
떨쳐 내 버리고
높게만 느껴지던 드높은 하늘 위로 날아오를 수 있으리.
맑게 갠 바람의 소리가 들려오는 숲길 위에서
두 날개를 가벼이 펼치며
드높이 날아오를 수 있으리.
서문
새 아침
창밖의 햇살
바람의 피아노
서로의 얼굴
오늘의 날씨
빗속을 거닐다가
첫인사
너를 위해 처음 끓여 본 국
사랑의 사람
오늘 한턱낼게
빵의 표정
답안지의 오답
우리 강아지
잃어버린 물건
냉장실
오락실 소리
칭찬
그림자의 하소연
어제와 오늘의 나
메뉴 고민
체조 시작
뜻밖의 할인 쿠폰
분식왕
책 속의 비상금
무인 상점
식사 시간
오늘 하루에게
뒤로 인사
거울 앞에서
데이트빵
채소
고민 없는 점심
반말과 존댓말
아무도 없는 가게
특가 상품
터진 만두
무첨가 요리
보너스 봉투
식탁 위의 따스한 온기
그 물건을 사야 하는 이유
푸른 날의 생각
버스 앞좌석의 아기에게
산책을 나온 강아지
수박
가을바람이 부는 길
늘 정답게
고개 숙인 그대
부드러운 식빵
오늘도 혼자라면
다시 새롭게
모자를 선물로 받았어요
추억의 맛
분위기 괜찮았는데
리모컨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마음이 급하면
귀여운 동물
레스토랑에 기쁨의 이야기가 흐르면
귤 하나
자신만의 새 노래
다정한 우리
상추의 나라
드라마를 보고 난 후에
맛있는 디저트 아이스크림
서로의 그 눈빛으로
모자를 던져 줘
참 다행이야
산책 가자
물을 따라 물소리는 흐르고
청소는 즐거워
뷔페식당에 다녀와서
우유를 마시는데
틈틈이
지하철과 버스, 그 사이에서
그냥 김밥
출퇴근
전기포트 소리
튀어도 괜찮아
명작 영화
전화 문자
인사가 어색하게 느껴질 때
떡만둣국 속에서 터진 만두
식당의 큰손
농담이야
일련번호
아침의 빛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
걱정
구겨진 청바지
너무 추울 때
마음이 흐린 날에는
겨울 멋쟁이
고양이의 아침 인사
의자에 앉아 졸면
대충 산 옷
붕어빵 냄새
아기 풀
우리 집에 꼭 필요한 물건
너의 목소리
낯익지만 새로운 표정들
햇살 같은 편지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밝아 오는 밝음 속의 오늘
눈앞의 특가 상품
물 위에 비친 그 환한 미소
배고플 때 먹는 밥 한 그릇
겨울의 마음
안과 밖의 그 모습
푸른 스킨답서스
약과
미로 같은 생각에서 걸어 나와
유리같이 맑고 파란 날에
비가 내리는 길 위의 사람들
지난날 위로 흐르는 길 위의 불빛
생각의 모습
작은 꿈에게
고요하고 쓸쓸한 밤의 노래
칵테일 위의 새 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그대와 같은 아침에
강아지가 발을 핥는 이유
지하철 좌석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아
김밥 먹고 입맛 돌고
외로운 날에는
물끄러미 본다
웃음 짓고 있나 봐
빈 좌석이 보여도
서로를 감싸 안으며
빈방의 불빛
함께 어우러진 맛
이별의 성
가을빛의 표정
슬픔을 부르는 날에
나비의 나무와 나무의 나비
어제와 오늘
그대에게 그대를 이야기하였다
비에 젖어 빗물에 젖어
낯설지 않은 날에
딴청을 피우는 강아지
일이 잘되는 날엔
빗소리는 감미로운 재즈 음악처럼 흐르고
책상 위의 메모지
정든 날의 한숨처럼
그날의 길 위에는
안개 속에서 시작될 기다림
연분홍빛으로 피어난 아침의 꽃향기와 같이
종이 사람
푸른 바람과 같이 바다의 파도는 밀려와
그대가 오늘 내 이름을 불러 준다면
안개비 속을 꿈꾸듯 거닐며
모래 도시
새롭게 빛날 하나의 꿈이기에
바람의 의자
빗속의, 별빛 속의 고요한 산등성이 위에는
청색의 별빛은 숲길을 지나 하염없이 흐르며
도시의 외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새벽의 별빛 사이로
햇살 같은 볕이 내리비치는 창 앞에 서서
흐린 날에도 맑은 날에도 바람 소리가 들려와.
자그마한 몸집의 어린 새는 바람 소리가 자신을 이끄는 대로 바람을 따라 바람의 소리를 따라 바람과 같이 하염없이 어디로든 날아오르며, 자신을 스쳐 가는 바람 같은, 어디에도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드넓은 청량감을 느끼네.
흐린 날에도 맑은 날에도 그 바람만 분다면, 그 바람 소리만 들려온다면, 작은 새는 누구보다 큰 그 두 날개를 펼쳐 바람을 따라 드높이 끝없이 날아오르리.
유종우
창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바닷바람’을 발표하며 창작 활동을 시작함.
서정문학 신인상 수상.
지구 사랑 공모전 시 부문 입선.
최근작으로는 ‘동시 나라 동시집’, ‘겨울빛이 어린 동화집’, ‘집 없는 강아지’, ‘차 한 잔과 짧은 동화’, ‘노란색의, 파란색의, 주황색의, 빨간색의 빗물을 본 적이 있나요?’, ‘기다림 속으로 스며든 새벽의 눈물처럼’, ‘일상에서 만난 시’, ‘초록빛 동시처럼 푸르게 나부끼며’, ‘슬러시’, ‘상쾌한 바람이 불어온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