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텅 빈 곳에 들어섰어요.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어요.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했던 그곳에 홀로 앉아 있다가, 평소에 생각날 때마다 읽고 또 읽었던 책 한 권이 떠올랐어요.
내 옆자리에 놓아둔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내 손에 쥐어진 작은 책자.
책장을 한 장씩 넘겨 봐요. 어슴푸레한 연자색의 노각나무 잎사귀 같은 책 표지를 지나자, 연밋빛의 노각나무 꽃잎 같은 수많은 이야기가 나를 반겨요.
어느 해맑고도 새맑은 날에 눈앞의 노각나무를 향해 마음속으로 크게 소리쳐 보듯 마음에 와닿는 문구를 읽어 볼 수 있는 책장을 넘기며, 쉽게 흘려버렸을지도 모를 지나온 이야기들을 큰마음의 소리와도 같은 나만의 손길로 풀어 보아요.
연자색이 어우러진 연한 노란빛 노각나무의 잎이 나풀거리는 나무 숲길을 걷듯이, 그 나무의 빛깔과 향기를 닮은 책 속을 거닐며, 그 그림 같은 선율을 마음속에 떠올려도 보고 눈앞에 그것을 또 펼쳐도 보아요. 바람에 흩어져 노각나무 숲길 위로 흩뿌려지는 노각나무의 꽃잎들 사이로 그 꽃잎들의 속삭임 같은 노래가 들려오는 듯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 있던 그곳이, 그곳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로 어느덧 가득해져 갈 때쯤 손에 들려 있던 노각나무 잎사귀 같은, 꽃잎 같은 책자를 가방에 가만히 넣고,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눈앞에 새롭게 펼쳐지는 끝없이 길게 이어진 큰길을 다시금 눈부시게 드밝게 비추어 줄 단 하나의 마음과도 같은 향기로운 그 빛줄기를 바라보아요.
서문
햇살의 잎사귀는 물 위에 비치어 들며
새벽의 별빛 하늘
보랏빛 나뭇잎의 향기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푸르게 내달리며 나부끼며
물빛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
사랑의 빛이 가득한 어느 날에
바람과 같이 강물과 같이 흐르며
숲속에 그려 보는 너
차디찬 비바람 소리는 창유리를 타고 흐르며
달빛의 물과 조약돌
풀 내음이 넘쳐흐르는 피리 소리
빗물이 떨어지는 안개의 아침에
산골 소년의 밀짚모자
물 소라
하얀 눈의 나뭇가지
밝고 맑은 연둣빛 수초의 향기
아이들이 잠든 밤에
별빛 하늘에 별빛이 흐르듯
맑은 구름의 이야기
거울 속의 소녀
나선형 계단은 구두끈처럼 흘러내리며
멀리 있어서
새벽에도 들을 수 있는 숲의 향기 어린 목소리
나뭇잎들이 겨울 추위에 흩날려도
창밖의 빛을 그리워하면
겨울빛 같은 겨울의 그 눈빛으로
회오리바람 같은 피리 소리
별빛의 향기
겨울의 달과 별은 나무의 빛과 같이
파란 빗물은 창밖에 떨어져 내리고
환희 속의 기쁨
물기에 젖은 손은 안개에 감싸여
하루 내내 바라보던 나무의 그 모습
새벽 바다의 숲에는
유리 위의 유리별
겨울빛의 길을 걸으면
달밤의 달과 별
빗물의 기억
자작나무 꽃잎
눈 덮인 숲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안개처럼 흐르는 나무 사이로 밀려드는 별빛의 날에
아이들은 겨울 눈길을 걸으며
새벽하늘의 구름을 따라
별빛은 나무 위에 흰 눈처럼 내리고
너는 나비
물 위에 어린 검불과 수숫잎은 다시 나부끼며
유리 빛깔의 그리운 맑은 숲에는
새들이 노래하는 계곡
하얗게 그립게 밀려들며
너와 내가 바라보는 별
늘 한결같이 반짝이며 물결치며
푸른 나무의 어느 하루
별빛이 어린 물결과 같이 물 위의 작은 별빛은 흐르며
전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이 마법같이 불어치면
눈 덮인 오솔길
물속을 헤엄치다가
겨울 길 위에서 흩날리어 나부끼어
창밖의 작은 동박새
나무가 서 있는 곳으로 가을은 다시 돌아와
하얀 휘파람
새롭고도 드밝은 꿈의 빛으로
그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지
나비의 잎사귀
눈꽃 화산
물결치는 그 모습 속의 모습으로
새롭게 밝아 오는 그 마음의 불빛
네 마음을 노래하는 숲길 위의 그 빛깔을 따라
그 눈빛이 물과 같이 길을 따라 흐르며
푸르게 밀려오는 저 먼바다의 달빛
새벽빛이 스민 겨울 호수 위의 회전목마
그날은 하염없이 나뭇가지 사이로 하얗게 피어오르며
아침의 창가에 눈꽃 같은 겨울 안개는 흐르고
달 사람
눈부신 햇살의 아침에 맑고 다사로운 그 아침의 품에 안기어
생각날 때 한 번씩 읽기에 좋은 책이 있다면, 그 책으로 인해, 그 손을 거머쥔 한쪽 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하게 넘치는 사랑과 온기로 다사로워질 수 있을 듯해요. 좋은 시집으로 추천해 드리는 한 권의 책을 통해 한층 밝아진 눈과 마음으로, 어느 때나 읽기에 좋은 시들을 마음 한쪽의 빈 페이지에 살며시 적어 보듯이 여유롭게 읽어 보는 건 어떨까요?
유종우
창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바닷바람’을 발표하며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서정문학 신인상 수상.
지구 사랑 공모전 시 부문 입선.
늘 곁에 두고 읽기에 좋은 시집으로, ‘기다림 속으로 스며든 새벽의 눈물처럼’, ‘초록빛 동시처럼 푸르게 나부끼며’, ‘겨울빛이 어린 동시집’, ‘늘 반짝이기에’, ‘동시 나라 동시집’, ‘겨울빛이 스민 동시집’, ‘차 한 잔과 짧은 시’, ‘겨울빛이 그린 동시집’, ‘별빛과 도시 그리고 짧은 시’, ‘마네킨’, ‘동시 사랑 동시집’, ‘생활 속의 짧은 시’, ‘겨울빛이 내린 동시집’, ‘슬러시’, ‘보송보송한 구름 친구처럼 상냥하고 귀여운 숲 속 요정들’, ‘일상에서 만난 시’, ‘상쾌한 바람이 불어온다’ 등을 추천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