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에세이
염해일 교장의 80년 세 번째 모교 추억 여행
염 해일의 서른한 번째 수필집

염해일 교장의 80년 세 번째 모교 추억 여행

지은이 : 염해일
출간일 : 2026-10-23
판매가 : 6,000원
포멧 : ePub
ISBN : 9791139067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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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는 해방 다음 해인 1946년 음력으로 5월 29일 나의 고향인 예천군 지보면 어신리 큰 어지리에서 5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네 살 되던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에 북한의 남침으로 우리나라가 잿더미가 되었을 때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어렵게 보냈다. 열 살 되던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교과서를 나누어주었다.

교과서에서 어찌 그렇게 좋은 향이 나왔는지 모른다. 그 향에 취하여 초등학교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여 팔순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고 있다. 정년퇴직하던 2011년 5월에 수필가로 등단한 후 해마다 두 차례 설과 추석 명절에 수필집을 출간하여 이번 추석에 염 해일의 서른한 번째 수필집 ‘염해일 교장의 80년, 세 번째 모교 추억여행’을 출간하고 있나 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가장 멋지고 높은 사람같이 보였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이 꿈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선생님이 되려면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동사범학교에 들어가려면 안동 병설 중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때 안동 병설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하여 입시 공부를 많이 하였다.

그런데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안동 병설 중학교가 폐교되었다. 그래서 예천중학교에 입학시험을 쳐서 장학생이 되었다. 예천중학교가 고향 집에서 16km 떨어져 있어 고향 집에서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천읍에서 자취하였다.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공부하니 부모님이 보고 싶어 공부가 되지 않았다. 토요일만 되면 몸은 교실에 앉아 있는데 마음은 벌써 고향 집에 가 있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통지표를 받으니 우리 반 68명 중 34등을 하였다. 초등학교 때 계속 반장 하면서 1등을 하던 내가 처음으로 34등을 하니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2학기부터 고향 집에서 새벽에 일어나 호롱불 아래서 아침을 먹고 예천중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집에서 학교 다니니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이 되어 공부를 할 수가 있었다.

학교 가는 길에 경진에 있는 큰 강물을 건너 다시 예천읍에서 내려오는 한천 냇물을 건너 한천 둑길을 걸어서 다녔다. 한천 둑길이 넓고 길이 좋아서 걸어 다니면서 공부하였다. 그렇게 공부하니 성적이 점점 좋아졌다. 중학교 1학년 때 이런 가슴 아픈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 나의 아들들만은 부모님 곁에서 마음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계기를 마련해준 나의 모교 예천중학교이다.

중학교 졸업하던 해에 경북대학교 사대부속고등학교에 입학시험을 쳤으나 떨어졌다. 그래서 고향에 빈자리가 있는 예천농업고등학교에 추가로 입학하였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마음이 편안하여 공부를 마음껏 할 수가 있었다. 장학금을 받아 송아지를 사고, 남은 돈으로 중고 자전거를 사서 고향 집에서 자전거로 통학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예천중학교에 입학한 남동생과 사촌 동생을 데리고 대학 입시 공부하기 위하여 예천 농고 앞에 방을 얻어 자취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교과서 없이 수업하시는 진신완 수학 선생님이었다. 예천 농고 사택에 사시던 담임선생님이 예천읍에 있는 영수학원에 강사로 나가시면서 나를 데리고 나갔다. 그래서 대학 입시 공부를 많이 하였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교사가 될 수 있는 안동교육대학에 합격하였다.

1969년 2월에 안동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3월 1일 자로 나의 고향 면 옆에 있는 풍양초등학교에 첫 발령 받으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었던 교사의 꿈을 이루었다. 풍양초등학교에 4개월 14일간 근무한 후 1969년 7월 15일 자로 나의 고향 면에 있는 지보초등학교로 이동하였다.

지보초등학교로 이동하면서 고향 집에서 3년 7개월간 출퇴근하다가 예천군의 중심학교인 예천초등학교로 이동하면서 예천초등학교 뒤편에 부엌으로 드나드는 단칸 셋방을 얻어 분가하였다. 예천초등학교 근무할 때 첫 발령을 받으면서 시작한 국어과 중등교사 자격검정 고시에 6년 만에 합격하여 예천초등학교에서 예천군 내에 있는 용궁 종합고등학교로 전직하였다.

중등으로 전직하니 동료 교사들은 모두가 학사학위가 있는데 나만 2년제 교육대학을 졸업하였기 때문에 학사학위가 없었다. 그래서 학사학위를 받기 위하여 그 당시 개교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3학년에 편입하였다.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공부하면서 녹음하였다. 녹음한 내용을 여러 차례 재생하여 들으면서 요점 정리하였다.

볼펜을 쥔 오른쪽 손가락의 엄지와 검지와 중지에 굳은살이 생길 정도로 공부하였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다닐 때 한 번도 배우지 못하였던 유기화학이란 어려운 과목을 라디오를 들으면서 공부하였다. 녹음한 내용을 얼마나 여러 차례 들었는지 여름방학 때 한국 방송통신대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니 100점이 나왔다. 그래서 한국방송통신대학을 다닐 때 장학금을 받아 집사람 손목시계를 선물하였던 추억도 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종합시험에 합격하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학사학위를 받자마자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과에 원서를 내어 합격하였다.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들 다닐 때는 금호여자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대학원 공부하면서 ‘高等 國語1의 表現, 理解 領域 硏究(고등 국어1의 표현, 이해 영역 연구)’란 석사 학위 논문을 이현규 지도 교수님의 지도받으면서 썼다. 3차까지 논문심사를 통과 하여 석사 학위를 받느라고 고생을 너무도 많이 하였다.

내가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과에 입학할 때 여덟 명이 입학하였다. 그중에 나와 함께 두 사람만이 석사 학위 논문에 통과하여 석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석사 학위 심사받는 것이 까다로웠다. 논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은 수료증만 받고 수료 후 다시 석사 학위 논문에 통과하여야만 석사 학위를 받을 수가 있었다.

석사 학위를 받으니 교감승진에 가산점이 되어 교감승진에 0.001점으로 교감승진 대상자로 선정되고 떨어지고 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평상시에 자격증을 많이 받아 놓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안동교육대학을 졸업하고 풍양초등, 지보초등, 예천초등 세 개의 초등학교에 근무한 후 국어과 중등교사 자격 검정고시를 통하여 중등으로 전직하였다. 중등으로 전직한 후 교사 시절에는 용궁 종합고등학교, 예천농업고등학교, 금호여자고등학교, 경산고등학교, 문경서중학교, 선산 여자고등학교 등 여섯 개 학교에서 근무하였다.

선산 여자고등학교에서 교감으로 승진하여 다인종합고등학교으로 승진 이동한 후 구미시 진평중학교, 경산시 장산중학교 등 세 개 학교에서 교감으로 근무하였다. 장산중학교 교감에서 포항 호미곶광장 솔숲 속에 있는 대보중학교 교장으로 승진 이동한 후 영천여자중학교 교장으로 이동하여 두 개 학교에서 교장으로 근무하였다.

내 나이 65세 되던 2011년 2월 14일에 초, 중, 고 열다섯 학교에서 42년간 근무한 후 영천여자중학교 대강당에서 교장으로 정년 퇴임식을 하고, 그해 2월 말로 정년퇴직하여 벌써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음력으로 5월 29일인 2024년 7월 4일이 나의 79회 생일날이었다. 79회 생일을 맞아 2025년 나의 팔순 생일에 염 해일의 스물여덟 번째 수필집 ‘염해일 교장의 80년 추억여행’ 수필집을 출간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79회 생일날인 2024년 7월 4일 날부터 염해일 교장의 80년 추억여행을 시작하였다. 첫 번째로 금호여자고등학교, 영천여자중학교, 대보중학교를 추억여행 하였다. 금호여자고등학교는 고향에 있는 예천 농업고등학교에 근무하다가 아들들 교육을 위해 대구로 이사 오기 위하여 이동한 학교이다. 대구로 이사를 와서 우리 아들들이 마음 편하게 공부할 수 있게 하여준 학교이다.

영천여자중학교는 초, 중, 고 열다섯 학교에서 42년간 근무한 후 내 나이 65세에 정년퇴직하였던 마지막 학교이다. 대보중학교는 교사들의 꽃이라고 하는 교장으로 승진 이동한 학교이다. 대보중학교의 조용한 교장실에서 1년 동안 구양수의 삼다(三多)를 실천하였다. 250여 권의 수필집을 읽고(多讀), 생각하면서(多商量), 80여 편의 글을 쓴(多作) 학교로 내가 수필가로 등단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학교이다.

첫 번째로 세 학교를 추억여행 하면서 교장 선생님과 인터뷰한 후 학교 실내외를 한 바퀴 돌면서 내가 근무할 때 추억을 회상하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키네마스터로 편집하여 유튜브로 올렸다. 올린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염해일 교장의 80년 추억여행’ 글을 썼다. 추억여행으로 쓴 글을 다시 시나리오로 재편집하여 찍어온 사진과 동영상에 묵음 처리한 후 내 목소리로 녹음하여 다시 유튜브로 올렸다. 첫 번째로 추억 여행한 후 여행 정리를 모두 마치고 나니 23일이 걸려 2024년 7월 27일이었다.

두 번째 추억여행은 2024년 7월 29일에 풍양초등학교, 지보초등학교 추억 여행하였다. 풍양초등학교는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첫 발령 받으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나의 꿈이었던 교사의 꿈을 이루었던 학교이다. 고향 집에서 통근할 수 없어 학교 옆에 방을 얻어 자취하였다. 너무 불편하여 4개월 14일간 근무한 후 1969년 7월 15일 자로 나의 고향 면인 지보초등학교로 이동하였던 학교이다.

지보초등학교는 내가 두 번째로 근무한 학교로 고향 집에서 3년 7개월간 통근하였던 학교이다. 지보초등학교를 추억 여행하면서 지보초등학교 연혁실을 관람하였다. 연혁실에 지보초등학교로 병합된 나의 모교인 오산(어신)초등학교의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오산초등학교 졸업앨범들을 구경하면서 초등학교 시절의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만나는 추억여행 하였다. 그래서 나의 모교 여섯 개 학교도 내가 근무한 열다섯 학교와 함께 추억여행 하기로 계획을 세우게 된 계기가 된 학교이다.

두 번째 추억 여행한 추억여행 정리를 모두 마치고 나니, 추석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정년퇴직 후 1년에 두 차례 설과 추석 명절에 수필집을 출간하고 있다. 그래서 세 번째 추억여행은 뒤로 미루고, 우선 급한 2024년 추석에 출간할 염 해일의 스물일곱 번째 수필집 ‘수필가 염해일 교장, 기자로 변신하였다.’란 수필집 출간원고를 써서 출판사에 보내고 나니 2024년 8월 18일이었다.

2024년 8월 23일에 세 번째 추억여행으로 문경서중학교, 선산 여자고등학교, 진평중학교를 추억여행 하였다. 문경서중학교는 내가 교감으로 승진하기 위하여 이동한 벽지학교로 내가 교감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학교이다. 선산 여자고등학교는 벽지학교인 문경서중학교에서 이동하여 교감 승진대상자로 지명받고, 교감 자격연수까지 받은 학교이다.

선산 여자고등학교로 이동하면서 5년간 교무부장으로 근무하면서 교감승진에 필요한 점수들을 모두 모았다. 교감승진에 필요한 점수는 경력점수(35년 근무하여 만점), 근무성적(교장이 주는 1등 수, 세 번 연속 받아서 만점), 1급 정교사 자격연수 점수(96점), 60시간 이상 받은 일반연수 세 개의 합산점수(99점, 99점, 98점), 연구점수, 벽지학교 근무점수, 국가 자격연수 점수, 연구학교 근무점수, 농촌학교 근무점수, 주임 근무점수 (7년 하여 만점)을 모두 채우고 나니 교감승진 대상자로 지명을 받고 교감 자격연수를 받았던 학교이다.

일반연수 세 개를 모으는데 고생을 너무 많이 하였다. 일반연수 세 개 중 두 개는 일찍 99점을 받았다. 그런데 일반연수 점수 한 개가 96점이었다. 96점을 1점이라도 더 높이기 위하여 60시간 이상 연수를 수없이 많이 받았다. 중등교사 글쓰기 연수받을 때 98점을 받아 교감연수대상자로 지명을 받았다.

연구점수를 받기 위하여 특별연구 교사, 수업 선도 교사, 현장 교육 연구대회, 경북 교육 예능 글쓰기 대회에 수없이 나가 상을 받아 만점을 채웠다. 그리고 국가 자격연수 점수를 받기 위하여 대구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는 워드 시험에 몇 차례 응시하였으나 독수리 타법으로 시험을 쳐서 떨어졌다.

그래서 독수리 타법이 아닌 운지법을 익혀 부산 상공회의소에 가서 쳤으나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대전 상공회의소에 가서 워드 3급을 받았다. 3급으로 국가 자격연수 점수가 모자라 대구상공회의소에서 컴퓨터 활용 능력 시험을 쳐서 1급을 받아 국가 자격연수 점수 만점을 채워 교감승진 대상자로 지명받았다.

구미 진평중학교는 선산 여고에서 교감으로 승진하여 의성 다인 고등학교에 1년간 교감으로 근무한 후 대구 우리 집에서 통근하기 위하여 이동한 학교이다. 진평중학교에 3년 근무한 후 교장 승진대상자로 지명받고 경산 장산중학교로 이동한 학교이다. 세 번째 추억 여행한 후 여행 정리를 모두 마치고 나니 2024년 10월 6일이다.

네 번째 추억여행은 2024년 10월 8일에 다인 종합고등학교, 용궁 종합고등학교, 예천초등학교를 추억여행 하였다. 다인 종합고등학교는 선산 여고에서 교감으로 승진 이동한 학교로 1년간 교감으로 근무한 학교이다. 용궁 종합고등학교는 예천초등학교에서 중등학교로 전직한 학교이다. 예천초등학교는 초임발령을 받으면서 시작한 국어과 중등교사 자격 검정고시에 6년 만에 합격하여 용궁 종합고등학교로 전직한 학교이다.

네 번째 추억 여행한 후 추억 여행한 정리를 모두 마치고 나니 2024년 10월 27일이다. 10월 28일부터 11월 1일까지 1주일간 고향 친구들의 부부 모임인 건우회에서 ‘세계문화유산인 타지마할이 있는 인도여행’ 하였다. 인도여행 하면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80여 편의 키네마스터로 편집하여 유튜브로 올렸다. 올린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내년 2027년 설날에 출간할 염 해일의 서른두 번째 수필집 ‘세계문화 유산인 타지마할이 있는 인도여행’ 기행문을 썼다.

인도여행 기행문을 쓰면서 2025년 설날에 출간할 염 해일의 스물여덟 번째 수필집 ‘염해일 교장의 80년 첫 번째 추억여행’ 출간 준비도 함께하였다. 그래서 염해일 교장의 80년 다섯 번째 추억여행을 할 수가 없었다. 2025년 설날에 출간할 염 해일의 스물여덟 번째 수필집 ‘염해일 교장의 80년 첫 번째 추억여행’이 2025년 1월 17일에 출간되어 각 서점에서 판매되었다.

그래서 다섯 번째 추억여행은 2025년 1월 21일에 예천 농업고등학교와 나의 모교인 예천중학교, 감천고등학교를 추억여행을 하였다. 예천농업고등학교는 나의 모교이면서 내가 교사로 4년간 근무한 학교이다. 폐교된 예천 농업고등학교 자료들이 보관된 경북교육청에 찾아가 나의 학창 시절 자료와 교사 시절의 자료들을 찾아보고 학창 시절과 교사 시절을 추억여행 하였다.

그리고 폐교된 예천 농고 자리에 세워진 경북도립대학을 찾아가 나의 학창 시절과 교사 시절의 흔적들을 찾아보았다. 아무 흔적들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나와서 경북도립대학 가까이에 있는 나의 모교인 예천중학교를 찾아갔다. 예천중학교는 내가 입학시험을 쳐서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고향 집에서 통학할 수 없어서 1학년 1학기까지 예천읍에서 자취하였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나니 성적이 너무 많이 떨어져 1학년 2학기부터는 고향 집에서 16 Km 떨어진 예천중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예천중학교는 이런 나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학교이다. 그래서 예천 농고에 교사로 근무할 때 우리 맏아들이 중3, 둘째 아들이 중1, 막내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일 때 아들들 교육을 위하여 정든 고향 예천을 떠나 대구로 이사 갈 수 있게 만들어준 계기를 마련하여 준 나의 모교인 예천중학교이다.

감천고등학교는 경산고등학교에서 교감으로 승진하기 위하여 벽지학교가 많은 문경으로 내신을 내었다. 대구 가까운 금호여고와 경산고등학교에 근무하여 이동점수가 낮아서 문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동되었던 학교이다. 감천고등학교에 1년 근무한 후 문경으로 내신을 다시 내어 벽지학교인 문경서중학교로 바로 들어갔던 학교이다. 감천고등학교에서 고3 담임하면서 수능 원서를 접수하러 대구에 있는 경북교육청에 왔다.

둘째 아들이 대학 2학년을 수료한 후 어릴 때 대수술을 받아서 대구 공군 비행장에 있는 공군부대에 방위로 근무하고 있었다. 감천고등학교 학생들 수능 원서를 쓰면서 둘째 아들의 수능 원서도 함께 써서 대구시 교육청에 접수하였다. 그해 수능시험을 1년에 두 차례 치면서 수능 문제가 IQ 검사 비슷한 수능이었다. IQ가 높은 둘째 아들이 두 번 모두 점수가 잘 나와서 교사 발령이 잘 나는 대구교육대학으로 학교를 바꿀 수 있었던 학교이다.

여섯 번째 추억여행은 2025년 2월 11일에 고향 부모님 산소와 부모님 산소 옆에 묻어 놓은 염 해일의 타임캡슐과 타임캡슐 앞에 우리 부부가 즐겁고 행복한 인생 여행이 끝나는 날 편안히 잠들 수 있는 자연장 부부 형 평장 묘에 풀 약을 치러갔다. 풀 약을 치러가는 길옆에 있는 나의 모교인 오산(어신)초등학교에 들어가 추억여행 하였다.

오산초등학교에 들어가니 학교 아저씨가 살던 집이 그대로 남아 있고, 건물도 그대로 남아 있다. 학교 건물 위에 태양광을 설치하여 놓았다. 운동장에 커다란 레미콘 공장을 지어 놓았다. 운동장의 절반 정도는 옛날 그대로 살려 놓았다. 그래서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추억들을 회상하여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모교 예천중학교에서 발급받은 생활기록부에 초등학교 6학년 때 생활기록부가 기재된 내용들을 회상하면서 초등학교 시절 추억 여행하였다.

모교 오산초등학교를 추억여행하고 부모님 산소에 도착하였다. 부모님 산소 옆에 코로나 기간인 2020년 5월 3일(일)에 100년 후인 2120년 5월 5일(일)에 개봉하는 염 해일의 타임캡슐을 묻어 놓았다. 타임캡슐에 보관된 것은 그때까지 내가 출간한 열여덟 권의 수필집, 염 해일의 발자취 파일, 그때까지 내가 쓴 1,476편의 글이 저장된 작은 컴퓨터라고 하는 외장하드이다.

발자취 파일에 염 해일의 교육자료 413점과 아버님이 물려주신 12점의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다. 그중에 학창 시절 교육자료들이 66점 보관되어 있다. 부모님 산소에 풀 약을 치면서 타임캡슐에 보관하여 놓은 66점의 학창 시절 교육자료의 목록과 각 자료에 얽힌 사연들을 써 놓은 글을 회상하여 보았다.

일곱 번째 추억여행은 2025년 2월 17일 그랜드 호텔에서 영남대학교 총동창회 겸 신년교례회에 참석하고, 나흘 후인 2025년 2월 21일에 내가 석사 학위를 받은 나의 모교인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추억여행 하였다.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은 금호여고 교사로 근무하면서 대학원 공부와 석사 학위 논문을 써서 통과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하였던 모교이다. 석사 학위 논문이 내가 교감으로 승진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던 학교이다.
여덟 번째 추억여행은 2025년 2월 26일에 경산고등학교와 경산 장산중학교 추억여행 하였다. 경산고등학교는 한 학년에 열반씩 있는 큰 학교이었다. 고3 담임하면서 쌓은 대학 입시 정보로 우리 아들 셋의 대학 진학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던 학교이다.

우리 맏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1지망을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2지망을 전자공학과에 원서를 내었다. 그런데 전자공학과에 합격이 되었다. 그래서 맏아들에게 1년 더 재수해보자고 하였다. 맏아들이 전자 공학과에 그대로 다니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맏아들 모르게 내가 유신학원에 찾아갔다. 유신학원은 단과반이라고 하면서 일신학원을 소개하여주었다.

일신학원에서 고등학교 성적 증명서를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맏아들 성적 증명서를 갖다주니 성적이 좋다면서 받아주어 등록하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맏아들을 설득하여 1년간 재수하였다. 1년간 재수하니 성적이 많이 향상되어 경북대학교 치과대학에 합격하였다.

둘째 아들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해에 대구 동산병원에서 대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예천에서 동산병원에 입원, 퇴원하면서 치료하여 완치판정을 받느라고 초등학교 다닐 때 공부하지 못하였다.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중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을 할 수 있는 대구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과에 합격하였다.

막내아들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 제1지망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제2지망을 유전공학과에 원서를 내었다. 그런데 2지망인 유전공학과에 합격이 되었다. 막내아들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의대가 목표이었다. 그래서 일신학원에서 1년간 재수하여 수능시험을 쳤다.

그런데 수능점수가 자기가 목표한 만큼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의대에 원서를 내지 못하고 주저주저하였다. 그래서 원서 마감날 내가 막내아들의 원서를 들고 가톨릭대학 의과대학에 접수하였다. 그런데 합격이 되었다. 경산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우리 아들 셋 모두를 대학 진학시키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던 학교이다.

경산 장산중학교는 진평중학교에서 3년 근무한 후 교장 자격 연수대상자로 지명받고 이동한 학교이다. 장산중학교에서 교원대학교에 가서 교장 자격연수를 받다가 과음과 과로로 간암에 걸렸다. 교장 자격연수를 모두 마치고 외국에 나가 3개월을 기다려 통 간 이식받고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포항 호미곶광장 솔숲 속에 있는 대보중학교 교장으로 승진 이동한 학교이다.

아홉 번째 추억여행은 2025년 4월 30일에 내가 졸업한 안동교육대학 제 3회 영주 전국동기회에 참석한 후 안동교육대학을 추억여행 하였다. 폐교된 안동교육대학 자료들이 안동대학에 보관되어 있다. 그래서 안동교대 3회 전국동기회가 끝난 후 안동대학교를 찾아갔다. 안동대학 민원 업무실에서 안동교육대학 다닐 때 자료들을 발급받아 안동교육대학 다닐 때 추억을 회상하였다.

폐교된 안동교육대학 자리에 안동시청이 옮겨왔다. 안동시청을 찾아가 안동교육대학의 흔적들을 찾아보았다. 안동시청이 안동교육대학 자리라고 하는 안동교육대학 ‘교적 비’를 찾아 읽어보면서 안동교육대학을 추억하였다. 그리고 안동시청 건물인 웅비관으로 들어가 시청 건물을 관람하였다. 안내하는 분이 안동교육대학 건물을 그대로 살려서 리모델링하여 시청 건물을 세웠다고 하였다.

그래서 안동시청에는 승강기가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시청 건물을 돌아보니 건물이 낯설지 않았다. 안동교육대학은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었던 교사의 꿈을 이루게 한 학교이다.

열 번째 추억여행은 2025년 5월 19일에 내가 학사학위를 받은 나의 모교인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추억여행 하였다. 내가 한국방송통신대학을 다닐 때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한국방송통신대학 자료들이 보관된 대구 경북지역학습관을 찾아갔다. 대구 경북 지역학습관에서 졸업증명서와 성적 증명서를 발급받고, 지역학습관의 실내외를 돌면서 내가 한국방송통신대학 다닐 때 추억들을 회상하여 보았다.

마지막 열한 번째 추억여행은 2026년 5월 16일에 ‘영남대학교 모교 방문 2026년 트레킹대회’에 참석하였다.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함께 모여 학교를 한 바퀴 걷는 트레킹대회를 마치고, 대운동장에 모여 여러 가지 다양한 행사 함으로써 나의 모교 여섯 개 학교와 내가 42년간 근무하였던 열다섯 학교까지 모두 추억여행을 마쳤다.

안동교육대학을 졸업하고 풍양초등학교, 지보초등학교, 예천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예천초등학교에서 국어과 중등교사 자격검정 고시에 합격하여 중등으로 전직하였다. 중등으로 전직하면서 교사 시절에는 교감으로 승진하기 위하여 벽지학교인 문경서중학교 3년을 제외하고 계속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고3 담임을 많이 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 국어를 가르치면서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구양수의 삼(三) 다(多)를 가르쳤다. 구양수의 삼 다는 남의 글을 많이 읽어보고(多讀), 글을 많이 써 보고(多作), 생각을 많이 하면(多商量)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학생들에게 구양수 三多(삼다)를 가르치면서 나는 실천하지 못하였다.

교사 시절에는 과다한 업무와 교재연구, 한국방송통신대학 3학년에 편입하여 학사학위 받고,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과를 다니면서 석사 학위를 받느라고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교감 시절에는 학교 업무를 총괄하느라고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경산 장산중학교 교감에서 포항 호미곶광장 솔숲 속에 있는 대보중학교로 승진이동 하면서 조용한 교장실에서 구양수의 삼 다를 실천하였다. 대보중학교 교장 사택에 살면서 매주 토요일 오후 대구 우리 집에 왔었다. 우리 집 가까이에 있는 수성 도서관에서 1주일에 다섯 권의 수필집을 빌려 가서 1년 동안 250여 권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다독을 실천하였다.

아침마다 매일 실시하는 직원회의 시간에 발표할 내용을 글로 쓰고, 매주 월요일에 운동장에서 실시하는 학생 전체 조회 시간에 학생들에게 훈화할 내용을 글로 쓰고, 크고 작은 학교 행사에 식사할 내용을 글로 썼다. 그리고 호미곶의 자연 풍광과 대보중학교 앞에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동해와 호미곶광장에 찾아오는 관광객들에 대한 글을 쓰면서 다작을 실천하면서 다상량도 함께 하였다. 1년간 구양수의 삼 다를 실천하고 나니 컴퓨터 앞에 앉으니 글이 줄줄 나왔다. 그래서 교장 시절에 153편의 글을 썼다.

대보중학교에서 영천여자중학교로 이동하여 초, 중, 고 열다섯 학교에서 42년간 근무하다가 내 나이 65세인 2011년 2월 14일에 영천여자중학교 대강당에서 교장으로 정년 퇴임식을 하였다. 정년 퇴임식을 할 때 교장 시절에 쓴 153편의 글로 565페이지의 대형 정년퇴직 기념수필집 ‘발자국’을 출간하였다. 출간한 발자국은 정년 퇴임식에 참석한 축하객들에게 선물하였다.

남은 책은 우리 손주 여덟 명에게 유산으로 남겨줄 책만 남겨 놓고, 친척과 친지들에게 선물하였다. 교감연수 동기인 작가 K에서 마지막으로 발자국을 선물하였다. K가 나의 정년퇴직 기념수필집 발자국을 읽어보고 수필가로 등단하여 보라고 권하였다.

그래서 정년퇴직하던 2011년 5월에 순수종합 문예지인 월간 문학세계와 한국문학 세상 신인문학상에 발자국에 실려 있는 ‘아내의 생일’을 두 문예지에 동시에 응모하여 동시에 당선되어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순수종합 문예지인 제203회 월간 문학세계에 실린 심사평과 당선 소감은 다음과 같다.

<심사평>
진솔함이 뒷받침된 탄탄한 문장력
염 해일 임의 ‘아내의 생일’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아내의 생일’에서는 순수한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아내의 생일을 맞이하여 늘 무관심하게 지내다가, 미역국을 끓여 정성을 담아내는 진솔한 마음을 잘 묘사하였다. 문장과 문장 그리고 단락과 단락을 구성해 내는 솜씨는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이끌어 가는 가장으로서 새로운 면모를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의 특징은 순수함과 진솔 성에 있다고 본다. 수필은 고백적이고 개성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장과 구성력, 그리고 새로운 생각으로 자기의 주관을 뚜렷하게 잘 드러내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수필의 참됨은 진솔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글의 순수함과 진정성에서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수필가가 되시기를 바라면서 신인상 등단이 새로운 출발이란 점을 명심하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대성하길 바란다.
♠<심사위원/도창회, 최정규, 金天雨, 정선교>


<당선 소감>
K형에게!
K형, 지난 2011년 2월 14일 42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는 정년 퇴임식을 하였소. 그날은 하늘에서 선녀님들이 내려와서 나의 정년퇴임을 축하하여 주었소. 선녀님들의 축하 인사를 받으면서 가느라고 40분이면 도착할 학교까지 무려 1시간 20분이나 걸렸소.

가는 도중에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였소. 아들들과 집사람, 친구들, 제자들, 친지들이 그 어려운 눈길을 뚫고 오고 있다네요. 눈물겹도록 반갑고 고맙더군요. 아들들과 우리 집사람은 친구 L 원장이 한창 축사를 하는 중에 들어왔소. L 원장이 하던 축사를 멈추고 600여 명의 축하객에게 집사람을 소개하였소.

L 원장의 축사 내용 한 부분을 소개하겠소.
염 교장은 그동안 써 놓았던 글을 가려 뽑아 정년퇴직 기념수필집 ‘발자국’을 출간하였습니다. 순수한 자신의 글 153편을 실어 놓았습니다. 기나긴 교직 생활에서 비롯되었던 환희와 갖은 애환들, 자연을 관조한 내면세계, 부조리한 사회의 비판, 인생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가족사를 담담하게 펼쳐 놓았습니다. 오늘 책을 받아 가셔서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K형!
정년퇴직 기념수필집을 친지, 선후배들, 제자, 학부형들에게 나누어 주었소. 작가인 K형에게는 맨 마지막으로 보냈소. 졸작을 K형께 보여 드리기가 겁이 나고 두려웠소. 그러나 K형은 저의 졸작에 대하여 격려와 극찬하여 주었소. 그리고 “등단하여 보라”고 권하였소. 그 칭찬에 멋도 모르고 투고하였소. 그런데 당선이 되었다네요. K형,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 K형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저의 졸작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수필가로 등단한 후 내가 살아온 시대상을 반영하는 생활 글을 쓰고 있다. 200자 원고지 40매 내외의 글을 써서 매주 월, 목요일에 다섯 곳의 인터넷 카페와 페이스북에 올린 후 나의 글 친구 300여 명에게 카톡으로 보내고 있다.

글을 보내지 않는 요일에는 내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키네마스터로 편집한 후 시나리오를 써서 내 목소리로 녹음하여 올린 유튜브를 나의 글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보내고 있다. 카톡 친구들로부터 받은 댓글에 대한 답글을 쓰면서 글 친구들이 보내준 유용한 정보들을 읽어본 후 집사람의 카톡으로 보내주고 있다.

인터넷에 올린 글들을 모아 해마다 두 차례 설과 추석 명절에 수필집을 출간하고 있다. 음력으로 5월 29일 나의 79회 생일인 2024년 7월 4일부터 내가 근무하였던 열다섯 학교와 나의 모교 여섯 개 학교를 추억 여행하였다.

추억여행 하면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키네마스터로 편집하여 유튜브로 올렸다. 올린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염해일 교장의 80년 추억여행 글’을 썼다. 쓴 글을 시나리오로 재편집하여 내 목소리로 녹음하여 다시 유튜브로 올리는 데 1년 가까이 걸렸다.

추억여행 하면서 쓴 글로 2025년 설 때 염 해일의 스물여덟 번째 수필집 ‘염해일 교장의 80년 첫 번째 추억여행’을 출간하였고, 2025년 추석 때 염 해일의 스물아홉 번째 수필집 ‘염 해일의 팔순 기념으로 장가계 여행’출간, 2026년 설날에 염 해일의 서른 번째 수필집 ‘염해일 교장의 80년 두 번째 추억여행’을 출간하였다.

정년퇴직 15년째인 이번 2026년 추석에 염 해일의 서른한 번째 수필집 ‘염해일 교장의 80년, 세 번째 모교 추억여행’을 출간하고 있다. 내년 2027년 설날에 출간할 염 해일의 서른두 번째 수필집 ‘세계문화유산인 타지마할이 있는 인도여행’ 출간, 내년 2027년 추석에 출간할 염 해일의 서른세 번째 수필집 ‘염 해일의 81세 생일 기념으로 백두산 여행’출간, 2028년 설날에 출간할 서른네 번째 수필집 ‘고향 친구들의 부부 모임 건우회에서 제주도 여행’이 다음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정년퇴직 후 수필가란 인생 열차를 타고 살아가는 지금의 내가 즐겁고 행복하다. 나에게 주어진 앞으로 삶도 수필가란 인생 열차를 타고 사회에 봉사하면서 살아가련다.

목차

1. 모교 오산(어신)초등학교 추억여행 18
가. 지보초등학교 추억여행에서 연혁실에서 병합된 모교 오산초등학교 자료 본 후 모교 추억여행 하기로 계획 세움 18
1) 병합된 모교 오산초등 1~6회 선배들 앨범 구경 21
2) 내가 졸업한 7회 앨범 보면서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과 친구들 회상 24
나. 부모님 산소 가는 길에 모교 오산초등학교 추억여행 26
1) 폐교된 오산초등학교 건물 보면서 초등시절 회상 26
2) 중학교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오산초등학교 생활기록부 회상 28
다. 부모님 산소 옆에 묻어 놓은 타임캡슐에 보관된 학창 시절 자료 31
1) 학창 시절 졸업장 목록과 졸업장에 얽힌 사연 회상 31
2) 학창 시절 통지표 목록과 통지표에 얽힌 사연 회상 34
3) 학창 시절 상장과 표창장 목록과 상장에 얽힌 사연 회상 36
4) 학창 시절 졸업앨범의 목록과 졸업앨범에 얽힌 사연 회상 38

2. 모교 예천중학교 추억여행 40
가. 모교 예천중학교 찾아가면서 추억여행 회상 40
나. 예천중학교 자료실에서 졸업앨범을 보면서 학창 시절 회상 43
다. 발급받은 졸업증명서, 생활기록부 보면서 중학교 시절 회상 46
라. 중학교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초등학교 성적기록, 실내외 돌면서 추억회상 49

3. 모교 예천농업고등학교 추억여행 51
가. 폐교된 예천 농업고등학교 자료들이 보관된 경북교육청을 찾음 51
1) 발급받은 생활기록부 보면서 고등학교 시절 회상 54
2) 졸업증명서로 학창 시절, 경력증명서로 교사 시절 회상 56
나. 예천 농고 자리에 세워진 도립대학에서 학창 시절과 교사 시절 회상 59

4. 모교 안동교육대학 추억여행 62
가. 안동교대 제 3회 영주 전국동기회 참석 62
1) 안동교대 제 3회 영주 전국동기회 모임 안내 62
2) 자가용으로 안동교대 제 3회 영주 전국동기회에 참석 67
3) 안동교대 제 3회 영주 전국동기회 행사 참석 73
4) 안동교대 제 3회 영주 제일교회 카페에서 우리 4반 간담회 77
나. 모교 안동교육대학 추억여행 79
1) 폐교된 안동교대 자료가 보관된 안동대학 도착 79
가) 안동대학에서 발급받은 학적부를 보면서 교대 시절 회상 81
나) 안동대학에서 발급받은 성적 증명서 보면서 교대 시절 회상 83
2) 안동교육대학 자리에 세워진 안동시청에서 교대 시절 추억 86
가) ‘안동교육대학 교적 비’ 보면서 교대 시절 회상 86
나) 안동교대 건물을 리모델링한 안동시청에서 교대 시절 추억 91
다) 안동교대 건물을 리모델링한 시청 부속건물 관람 후 대구로 돌아옴 93

5. 모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추억여행 95
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추억여행 떠나는 날 아침 95
나. 한국방송통신대학 추억여행 떠나는 날 오전 100
다. 점심 식사 후 모교 한국 방송통신대학 추억여행 104
1) 한국방송통신대학 찾아가는 길 104
2)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추억을 회상할 서류 발급받음 106
가) 발급받은 졸업증명서, 학적부, 성적 증명서 보면서 추억회상 108
나) 발급받은 학년, 학기별 성적확인서 보면서 추억회상 112
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실내 돌면서 학창 시절 회상 115
라) 한국 방통대 실외 관람 후 우리 집에서 방통대 졸업증서 발견 118

6. 모교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추억여행 122
가.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추억여행 122
1) 영남대학 교육대학원 추억 여행 가면서 추억여행 회상 122
2) 발급받은 학위 수여 증명서, 성적 증명서로 교육대학원 회상 126
3) 교육대학원 실내를 돌아보면서 대학원 생활 회상 129
4) 교육대학원을 추억여행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133
나. 모교 영남대학교 방문 2026년 트레킹대회 추억여행 135
1) 영남대 방문 2026년 트레킹대회 참석 안내 135
2) 모교 영남대 방문 2026년 트레킹대회 참석하는 날 아침 138
3) 모교 영남대 방문 2026년 트레킹대회 가는 모습 142
4) 모교 영남대 방문 2026년 트레킹대회 행사 참석 145
가) 트레킹대회 행사로 외국인 학생에게 한국은행 조화 세트 추첨 148
나) 트레킹대회 행사로 기념주화와 기념 화폐 추첨 151
다) 교직원 팀과 동문팀 화합 줄다리기와 냉장고 행운권 추첨 155

책리뷰

저자소개

1. 출생지: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어신리 356
2. 현주소: 대구시 수성구 국채보상로 966-9
3. 학력:
(1) 안동교육대학, (2) 한국방송통신대학(제1회 졸업), (3)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교육학 석사)졸업, (4) 중등교사 자격 검정고시(준교사 국어) 합격으로 중등으로 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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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직 경력
1) 교사 경력: 풍양초(예천), 지보초(예천), 예천초(예천), 용궁 종합고등학교(예천), 예천농업고등학교(예천), 금호여자고등학교(영천), 경산고등학교(경산), 감천고등학교(예천), 문경서중학교(문경), 선산 여자고등학교(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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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교감 경력: 다인 종합고등학교(의성), 진평중학교(구미), 장산중학교(경산)
3) 교장 경력: 대보중학교(포항), 영천여자중학교(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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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 중, 고 열다섯 학교에서 42년간 근무한 후 2011년 2월 14일 영천여자중학교 대강당에서 교장으로 정년 퇴임식(대통령으로부터 황조근정훈장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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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년퇴직 후 경력
1) 금빛평생교육봉사단 활동
(1) 대구 서부도서관에서 어르신 한글 교육봉사
(2) 다문화 가정(베트남) 학생의 한국어 지도 봉사, 
(3) 대경뿌리학교 교육위원으로 초, 중, 고 현장에 나가 학생들에게 뿌리교육과 전통 놀이지도,
(4) 대구 문화재 지킴이 회원으로 문화재 보호 활동.
* 2017년 12월 15일 대구시 교육감으로부터 최우수 금빛평생교육봉사단원으로 선정되어 감사패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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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매일신문의 자매지 시니어 매일 기자
(1) 2019년 1월 29일에 매일신문의 자매지인 ‘시니어 每日’1, 2차 기자 시험에 최종 합격하여 기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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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필가로 등단
(1) 2011년 6월 18일 순수종합문예지인 ‘월간 문학세계’와 ‘한국문학 세상’ 신인문학상에 동시에 응모하여 동시에 당선되어 수필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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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필가로 등단한 후 200자 원고지 40매 내외의 생활수필 2,401편을 써서 매주 월, 목, 토(화)요일에 페이스북과 다섯 곳의 인터넷 카페에 올리고, 300여 명의 나의 글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보내고 있음, 글을 보내지 않는 나머지 요일에는 나의 생활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 키네마스터로 편집하여 시나리오를 써서 내 목소리로 녹음하여 올린 유튜브 2,625편을 나의 글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보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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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터넷에 올린 글들을 모아 해마다 두 차례 설과 추석 명절에 수필집을 출간하여 2026년 이번 추석에 염 해일의 서른한 번째 수필집 ‘염해일 교장의 80년, 세 번째 모교 추억여행’을 출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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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출간한 수필집
발자국(정년퇴직 기념수필집)> <교장 선생님의 일기> <맛깔스런 댓글이 달린 수필가의 일기> <동기들 방에서 나눈 행복한 대화> <신명 나는 밀실의 행복> <카페 회원들이 동참한 맛 나는 수필> <인생 삼모작> <은퇴 후 또 다른 삶> <간이식 수술 후 덤으로 사는 행복> <종심에 누리는 행복> <수필가의 인생 열차> <인생 삼 막 공연 중> <작가의 영혼을 춤추게 하는 글 친구들> <열정과 예술이 살아 숨 쉬는 남유럽 여행>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간이식 후 수필가가 찾은 행복> <수필이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 <글 친구들과 함께 글을 쓴 2014년으로 수필여행> <타임캡슐로 코로나를 극복하다> <열정과 예술이 살아 숨 쉬는 남유럽 여행> <겨울왕국의 백야의 나라 북유럽 여행> <죽기 전에 꼭! 한번 가 보아야 할 미국 동, 서부 여행> <자연이 아름다운 호주 여행> <지열의 북섬과 만년설의 남섬이 조화를 이루는 뉴질랜드 여행> <카페 회원들의 맛깔스러운 댓글과 답 글이 달린 실크로드 답사> <한/러/일 롯데 크루즈 여행> <장강 삼협 크루즈 여행> <태국의 방콕, 파타야 여행> <수필가 염해일 교장, 기자로 변신하다> <염해일 교장의 80년 첫 번째 추억여행> <염 해일의 팔순 기념으로 장가계 여행> <염해일 교장의 80년 두 번째 추억여행> <염해일 교장의 80년, 세 번째 모교 추억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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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염 해일의 타임캡슐
1) 정년퇴직하던 해에 영천여자중학교 제49회 졸업생들에게 타임캡슐을 묻어 줌
(1) 묻은 날: 2010년 11월 24일
(2) 보관한 물건: 영천여중 제49회 졸업생 231명이 졸업 후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취업이 되었을 15년 후 31살이 될 자기에게 쓴 편지, 교복과 중학교 시절에 즐겨 먹었던 과자 외 추억이 될 만한 학창 시절에 사용한 물건 26점
(3) 열어보는 날: 중학교 졸업 15년 후인 2026년 2월 1일(일요일) 낮 10시 모교 타임캡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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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향 예천 부모님 산소 옆에 염 해일의 타임캡슐 묻음
(1) 묻은 날: 2020년 5월 3일(일)
(2) 보관한 물건: 염 해일이 출간한 18권의 수필집, 염 해일의 발자취 파일(염 해일의 교육자료 413점과 부모님이 물려주신 12점), 작은 컴퓨터라고 하는 외장 하드(내가 쓴 1,476편의 글과 출판 원고, 일상 생활하면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 저장)
(3) 열어보는 날: 100년 후인 2120년 5월 5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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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일보사 150주년 타임캡슐에 보관
(1) 묻은 날: 2020년 11월 5일 조선일보사 100주년 기념일
(2) 보관한 물건: 염 해일의 타임캡슐에 보관한 작은 컴퓨터라고 하는 외장 하 드 사본과 여덟 명 손주들에게 쓴 편지
(3) 열어보는 날: 50년 후인 조선일보사 150주년인 되는 2070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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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타~ 2007년 여름에 간암 진단받고, 외국에 나가 통 간이식 받음>